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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 Han P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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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것에 대해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정통(?) 인문학자도 아니다. 단지 건축을 통해서 인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순진한 한 학생이다. 단지 나는 철학적인 아이디어들을 좋아하고, 인문학적 태도의 값어치를 존중한다. 비록 나의 생각과 공부들이 철학적이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철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은 일반인이 철학적 사유를 한다는 것에 대한 맹렬한 비판은 없고, 그 나름의 소신과 감성이 이론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이 된다면, 나는 내 식대로의 썰을 좀 더 자신있게 풀어 나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일부러 현학적이고 싶지도 않고, 어려운 말을 골라가면서 쓰고 싶지도 않고, 멋있는 척 하기는 더욱 더 싫다. 그치만, 마음 깊숙히 뿜어져 나오는 불확실함과 허무함, 그로부터 도출되는 불안함을 침묵으로 일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내가 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에 나는 어떤 식으로든 해명해 나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유아기를 지냈고, 청소년기를 지냈고, 청년기를 어느 정도 마무리 한 것 같다. 30살의 첫자락에 서서, 나는 다시 한번 나를 점검해 본다. 내가 지금 내 삶의 주기에서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왜 살고 있을까. 왜 지금 공부를 하고 있을까. 왜 일은 하지 않고 있는가. 등등.. 나이브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의식적으로 계속 생각이 들기 때문에, 실은 거의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뇌가 작동하는 느낌이다. 왜 지금 살아가야 할까..?

살아간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얼마전 나의 지도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Man is born to die."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났다. 태어난 것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고 죽는 것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 나의 의지라는 것은 굉장히 한정된 테두리 내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나는 결국 태어나서 죽기까지 개인의 역량을 초월하는 거대한 흐름에 의해 임의로 살아지는 것인 셈이다. 그래서, 나의 의지대로 무엇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만큼 의미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이 되기도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살고 싶다는 말은, 단지 죽기 싫다는 말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고 싶다는 말은,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는 한 생명체로서 숨을 쉬고 싶다는 말일테다. 다르게 말해서, 살고 싶다는 말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시간성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살고 싶다는 말은 시간성이 유효한 삶의 모든 범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살고 싶다는 것은 사람은 죽을 운명을 갖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죽음을 당연한 현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죽고 싶다는 말 또한 단순히 살기 싫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상식적으로 죽은 다음에는 현실 세계에서 살 권한이 없어지기 때문에 죽음을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는 의문이 든다. 누군가가 죽고 싶다고 말한다면 따라서, 죽음의 상태를 가상으로 머릿속에서 그려보며, 실제로는 불가능한 죽음에서의 인식을 가능한 것으로 설정한다는 말이 된다. 죽고 싶다는 말은 죽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단순히 살고 싶다는 또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살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인정하는 셈이 되고, 죽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살아감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미개 개인이 택할 수 있는 것은 미미한 자유의지일 것이다. 무언가 프로세스가 굉장히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기분이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하찮으며, 지적 사고의 과정에서조차도 모순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냥 입닥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사람이 하는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마치 죽지 않기 위해 먹으며, 사라짐을 두려워하여 종족 번식을 하며, 살고 싶기에 무덤을 생전에 돈주고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현재 이 순간을 어떻게 가장 잘 정의해야 할까..?
# by paeks | 2008/01/19 15:08 | Diary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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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버섯 at 2008/01/22 20:53
죽고 싶다는 건, '이대로' 살기는 싫다는 말 아닐까. 흠;
Commented by paeks at 2008/01/23 11:53
맞아요. 조금 더 나은 자신을 기대하는 또다른 표현이지..

우리는 항상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삶이기를 원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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